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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맺힌 삶의 응어리에 숨쉬기조차 버거운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단숨에 읽으십시오. 넘기는 책장마다 공감적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홀연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내면의 소리가 터져 나오며 삶의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가 생길 겁니다. 그러면 책을 덮고 삶으로 돌아가십시오. 비록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당당한 삶을 맞이할 것입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은이), 박미경 (옮긴이), 다산초당 (출판)

    당신이 17년간 숲 속에서 수행해 얻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17년. 그 길고 고됐던 수행으로 무엇을 얻었냐는 물음에 서둘러 대충 둘러대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본 것을 곧이곧대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제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안에서 답변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모든 재산을 나눠준 저자는 태국 밀림의 엄격한 계율에 따르는 숲 속 사원에 귀의해야 합니다. 지혜가 자라는 사람이라는 뜻의 법명나티코가 되어 17년간의 수행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는 어떻게 해서든 끊임없는 불안과 의심을 부르는 마음속 소음들을 잠재우고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얻은 것은 그 소리를 없앨 수도 없으며, 그때까지 '나'라고 믿었던 것은 이런저런 잡다하고 충동적인 생각들의 조합일 뿐이란 깨달음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배운 것이 있으며 우리는 그 생각들을 모두 믿어버리는 대신 멀리할 수 있으며, 그때 우리 내면에 원래 존재하던 지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배운다. 그래야 폭풍우가 닥쳤을 때도 기억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모두가 인생의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17년을 숲 속에서 수행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며 하지만 매 순간 오늘의 사회에서 주어지는 모든 자극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온갖 박탈감과 초조함, 허무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불편하게 살고 있다면, 습관적으로 불행과 불안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면, 그 패턴에서 벗어나 좀 더 평온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에서는 언제고 폭풍우를 맞이하게 됩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옵니다. 하지만 이때 자기 생각을 모두 믿어버린다면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빠져 들뿐 좀 더 평온한 시기에 생각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면 두려움과 아픔이 마침내 당신을 찾아왔을 때 가느다란, 그러나 굳건한 구명줄이 되어줄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서양인이 승려가 되는 게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이후 환속했고 사회부적응자처럼 칩거했으며 루저같이 느껴져 우울을 겪었다는 것, 조금 이겨낼 만하니 루게릭 진단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 승려로써 20여 년간 수행해 온 자로써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하는 점들이 궁금해 여러 번 미루다 구입한 책입니다. 아마 칩거생활을 마친 뒤 강단에 섰을 때 이런 이야기들을 했을 것 같았습니다. 어떤 경위로 승려가 되었고, 입문 과정에서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어떤 에피소드를 통해 이러저러한 깨달음을 얻었노라고.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았다는 이야기는 책의 말미에 나옵니다. 저자도 사람인지라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분노하고 슬퍼했지만 결국은 사실을 받아들였고 이후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농담처럼 이 말을 잘 던집니다. 한바탕 이 사람 걱정 저 사람 걱정해 주며 수다를 떨고 나면 말미에 이런 물음이 늘 남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그러니까. 과장님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 딴에는 진심이라 주먹을 너무 꼭 쥐고 살지 마세요.라고 하는 저자의 말, 기적에게 기회를 주세요. 내지 앞으로 닥칠 미래를 내가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말, 그런 말들을 나는 이제 마흔이 넘어가며 깨닫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물었을 때 그때 농담으로라도 누군가 말해 줬더라면 참 좋았겠다 싶다. 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하려고 하지 말라고. 인생이 계획대로 다 되는 게 아니라고. 아마 그랬다면 덜 소란스럽게 살았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안락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닿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묘하게 안락사가 불교적 세계관과 닿아 있을 즘에 죽음은 추상적인 게 아니라 대단히 물질적인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준비된 죽음을 통해 편안하게 육신에서 멀어져 가는 정신세계를 그려보면 정말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것으로 다가옵니다. 가족들에게 충분히 사랑한다 말하고, 제 육신에게 고생했노라 이제 나는 준비가 되었노라 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완전하게 이별하는 것,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가장 이상적인 답이지 않을까.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쩌면 내가 책을 읽는 궁극의 목표일지 모르겠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는 일상의 자잘한 소란들이 별 타격 없이 지나가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