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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가치가 교육, 환경, 가족, 건강, 정치 등 예전에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모든 영역 속으로 확대되어 돈만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이때, 마이클 샌델은 이 시대의 가장 큰 윤리적 물음을 던진다. 과연 시장은 언제나 옳은가? 이 책은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시장지상주의의 맹점을 파헤치고 있다. 시장논리가 사회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한 시장만능주의의 자화상이다. 저자는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공적 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샌델 특유의 문답식 토론과 도발적 문제제기, 그리고 치밀한 논리로 일상과 닿아 있는 생생한 사례들을 파헤치며 시장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철학논쟁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마이클 샌델 (지은이), 안기순 (옮긴이), 김선욱 (감수), 와이즈베리 (출판)

도덕적 가치와 덕목은 상품이 아니다.

1980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조세감면과 사회복지지출을 억제하여 '작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시행함으로써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시장지상주의의 번영을 알리는 서막의 신호탄으로 애덤 스미스의 초상화가 새겨진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시장자유주의가 오랫동안 경제 호황을 가져다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유례없는 풍요와 번영을 이끌어낸 시장자유주의는 인류가 미처 그다음을 선택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인간사회 자체를 거래가 최선의 행위로 강조하는 시장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재화를 사고판다'는 논리가 더 이상 물질적 재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점차 현대인의 삶 전제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윤리적 딜레마들은 대부분 저자가 태어난 곳이며 이미 시장경제가 활발히 작동하고 있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책의 서론에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장경제의 윤리적 딜레마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답게 거래 대상이 천차만별이다. 미국의 일부 도시에는 죄수가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호텔방 못지않은 독방을 마련해 주는 교도소가 있다. 댈러스에 위치하는 어느 학교는 학생들이 책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돈을 지급해 준다. 심지어 어느 명문대는 학생의 성적이 나쁘더라도 부유한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명문대로 입학하기 위한 명목으로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면 입학을 허락해 주는 비공식적인 관례도 있다고 한다. ('관례'라기보다는 '청탁성 뇌물'에 가깝다) 미국에서는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 윤리적 딜레마의 사례들이 과연 우리나라에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곳곳에 시장경제체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윤리적 딜레마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시장중심적 사고를 일상생활에서도 흡수하고 있다. 아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시장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이미 잠식당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게 되면, 시민정신, 관용, 공공성, 우정과 사랑, 명예 등 인간사회의 중요한 윤리적 덕목이 사라진다. 샌델의 말처럼 이 윤리적 덕목과 가치들은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는 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근육이다. 올바른 삶의 질로 이루어진 '근육'이 균형 잡혀야 '사회'라는 신체가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다. 하지만 근육은 오랫동안 운동하지 않는다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된다. 이렇듯 삶에서 중요하고도 가치로운 것이 상품화되면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정한 것들의 가치가 변질되거나 저평가되어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시장가치를 내면화하는 경향은 삶의 질, 맺어온 관계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의 대상이 아닌 '사물'로 인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시장 중심의 사고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센델은 시장경제의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도덕적, 정신적 논쟁을 꺼리는 태도로 인해 공적 담론에서 도덕적 에너지와 시민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시장경제의 고질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윤리적 딜레마는 빠른 시일 내 해결하기는 무척 어렵다.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이익과 효용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 또한 외면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문제를 인식한다고 해서 그것이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다. 우선 시장의 도덕성의 문제를 제기하여 시장의 가치에 의해 침해받고 있는 공공의 가치가 무엇이며, 그러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공적 토론을 벌임으로써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토론 여건이 필요하다. 공공의 영역으로 중요시되는 교육, 의료, 시민권 등은 돈과 시장의 가치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영역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가 공공선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정치를 밀어내서는 안 되며, 공공선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이견이나 생각을 이끌어내는 공적 토론이 필요하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논의와 시장에서 가격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되는 사회적 재화를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공적 토론을 통해 적어도 우리가 선택했고 적응하고 있는 사회의 이면에 대해서 대중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역시 저자의 이름에 기댄 조잡한 기획물일 거라는 편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나 쉽게 잘 쓴 책이다. 학계에서는 더 좋은 학문적인 논의가 많은지 모르겠지만, (나같이) 웹에서 어디까지 경제학적 사고가 사회에 침투해야 하나 논쟁을 하는 게 전부인 정도라면, 이 책을 꼭 읽어둘 필요가 있다. 시장주의는 강력한 도구이다. 경제학자는 자신들은 가치판단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게 더 효율적이다 외에 그게 더 좋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처방을 우리 사회 (미국과 한국)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왔는데,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사회의 가치관 변화가 수반되고 그것이 다시 사회의 물리적 조건들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 샌델의 주장이다. 우리는 그러한 변화가 옳으냐 아니냐를 따져 봐야 한다. 효율성과 옳음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경제학이 주장하는 시장에 의한 가치 분배에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을 샌델도 지적한다. 어떤 재화의 가장 큰 가치를 느끼는 사람이 시장주의자들 말처럼 과연 그 재화에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할 의사 (willingness to pay)가 있는 사람이라는 가정이 맞냐는 거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직관적으로 안다. 아이에게 가장 비싼 걸 사줄 수 있는 부모는 가장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라 부자 부모다. 경제학자도 알겠지. 그러나 계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약간의 트릭을 쓰는 걸 텐데,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자신이 쓴 게 트릭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는 거다. (돈을 주고 하는) '새치기'는 돈으로 기회를 사는 행위인데, 마이클 센댈은 이 같은 이유로 새치기가 '공정성'의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러한 행위가 재화의 가치를 '부패'시키는 것을 우려한다. 의회 공청회에 나 대신 줄을 서 줄 사람을 돈을 주고 고용해서 결과적으로 부자인 기업의 로비스트들만 참석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공정성의 문제도 문제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패시킨다는 것이다. 가치를 부패시킨다고? 그게 실체가 있는 주장인가? 경제학자들 혹은 공리주의자들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성매매를 반대하는 건 당신의 도덕관념을 만족시키기 위해 타인들의 정당한 거래와 그로 인한 후생의 증가를 부당하게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좋다는데 여기서 무슨 가치가 사라지나? 그러나 그런 일에 대한 비판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떨어지는 게 실체 없는 일일까. 똑같이 돈을 지불하더라도 요금과 벌금은 다르다. 고속도의 과속을 해서 내는 벌금과, '과속 허가권'을 구매하는 행위는 경제적으로 다를 바 없겠지만 사람들이 과속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을 당연하게 바꿀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연구가 있다. 혈액 판매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시스템에서는 자발적으로 헌혈하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사람들은 원래 피는 돈으로 사고파는 재화로 여기게 되고, 누군가 헌혈을 부활시키자고 하면 (예전에는 거의 가능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순진한 도덕주의자 취급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심지어 효율성 면에서도 성과가 떨어진다. 시장이 공동체의 암묵적인 좋은 의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 죽음과 관련한 시장, 명명권의 사례들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도덕 감정이 극단적인 지점까지 테스트받고 있음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그런 방향으로 흘라가는 우리가 여전히 시장을 가치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장은 최소한 자유주의라는 일관된 원칙이라도 있지 그렇다고 누군가의 도덕관념에 맞춰서 세상을 재편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맞는 반론이다. 그래서 샌델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에 대한 대화를 더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의 욕망

샌델은 가정생활을 비롯해 개인이 맺는 관계, 교육, 건강, 환경, 시민생활, 스포츠, 심지어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돈과 시장이 차지하는 적절한 역할을 놓고 토론하도록 독자를 격려한다. 시장이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과 시장논리를 적용하면 안 되는 영역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다루는 것은 수많은 경제적 사안들로 시장만능주의 시대의 자화상이다. 샌델은 시장이 인간 삶의 모든 면을 지배하게 된 현실을 분석하면서 시장이 결코 중립적인 장치가 아니라 재화의 특성을 변질시키는 힘을 가진 것임을 분석해 보이고 있다. 샌델은 우리가 사장의 무한한 확장에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안들이 공적 담론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그것을 허용할 것인지를 공적 검토를 통해 깊이 고민하고 서로 대화하고 합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것은 곧 정치의 문제다. 참된 정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삶의 구조를 다루는 것이며, 경제는 그러한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경제를 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매개는 윤리다. 책이 제기하는 문젯거리는 우리의 일상에 닿아 있다. 우리가 흔히 부딪히고 경험하면서 미궁에 빠져버리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사장논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 깊이 드리워진 그림자는 경제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정치의 참 의미를 망각한 채, 국가의 부를 좀 더 늘이면 시민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정치가들의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더불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조차 돌아보지 못한 채 좀 더 부자로 살아보려는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우리 자신의 탓도 크다.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사고는 우리 사회를 경제 중심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런 노력의 시장논리가 점점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을 지배해 버렸다.

도덕을 밀어내는 시장, 모든 것을 사고파는 사회를 해부한다.

샌델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사회가 시장경제(market economy)에서 시장사회(market society)로 옮겨갔다고 진단한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는 효과적인 '도구'인 반면,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다. 샌델은 기존에는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았던 영역에 돈과 시장이 개입하며 발생한 가치의 변질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이 많아지자 벌금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의 수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났다.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고 믿는 일반 경제학의 논리에 비추어본다면 매우 당황스러운 결과다.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올 때 느꼈던 죄책감이 벌금제도의 도입으로 요금을 지불하고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 변질된 것이다. 금전적 인센티브가 규범을 바꾼 것이다. 아이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서 아이가 책을 읽을 때마다 약간의 돈을 주는 것은 어떨까? 단기적으로 아이의 독서량은 늘릴 수 있겠지만 아이는 독서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쯤으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에게 주는 돈은 독서의 즐거움 때문에 책을 읽는 높은 차원의 규범을,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읽는 낮은 차원의 규범으로 대체하는, 도덕적으로 타협된 일종의 뇌물이라고 할 수 있다. 면죄부를 팔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 좋은 일이 아닐까? 대학 입학자격을 팔아서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 모두에게 이롭지 않을까? 선물을 받을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 모를 때에는 상품권을 선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경제학자들은 불평등하거나 강압에 의한 거래만 아니라면 시장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샌델은 성. 입학자격. 환경. 교육 등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의 지배를 받았던 영역까지 돈으로 사고팔면 도덕적 가치가 밀려난다고 반박한다. 즉 어떤 재화는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될 때 그 가치가 훼손되거나 변질된다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수많은 사례를 통한 치밀한 논증으로, 이처럼 돈으로 사고팔 때 원래의 가치와 목적이 훼손되는 재화의 경우에는 시장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언제 시장을 이용해야 하는지, 시장에서 거래하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려면 건강. 환경. 교육. 국가안보. 출산. 인권 등의 재화나 사회적 관행이 지닌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샌델은 우리 대신 시장이 가치를 결정하는 시장지상주의가 지난 수십 년간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도덕적 믿음을 공공의 장에 드러내 보이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시장에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시장지상주의의 참혹한 결과가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임시방편의 제도개선과 보여주기 식의 상생과 공생의 외침이 아니라, 시장과 시장의 역할에 대한 냉철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할 시기다. 샌델은 도덕적, 시민적 갱생에 대한 희망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바로 이러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재화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결정할 철학적 프레임을 제공한다. 결국 이 책은 샌델의 표현처럼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