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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 한 잔에는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맥주 한 잔을 마셔도 더 즐겁게, 더 지적으로 마실 수 있도록 맥주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모았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맥주의 발달 과정, 맥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 맥주를 너무 사랑했거나 맥주를 이용해 야망을 이룬 유명인들,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들, 현재 주목받는 브루어리와 한국과 북한 맥주의 현주소까지 망라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 딱 맞는 대화 소재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강희 (지은이), 북카라반 (출판)

    한국 맥주는 왜 맛이 없을까?

    마트나 편의점에 가보면, 맥주의 대세는 수입 맥주인 것이 한눈에 보인다. 수입 맥주 매대는 점점 늘어나고 한국 맥주는 구석으로 쫓겨나고 있다. '헬스 키친(Hell's Kitchen)'으로 유명한 요리사 고든 램지(Gordon Ramsay)가 광고를 찍고 내한까지 했지만 램지의 한국 맥주가 맛있다는 평가를 곧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심지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남한 맥주는 정말 맛없다며 북한 대동강 맥주가 더 맛있다고 했다.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반농담조로 옥류관 서울점과 함께 대동강 맥주 수입을 기대했다. 한국 맥주의 맛은 왜 천편일률적일까?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을 때, 카스와 하이트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 맥주의 고만고만한 맛은 독립 이후 계속된 두 기업의 독과점 구조에 있다. 물론 몇 번 제3의 맥주 회사가 나타나 삼사(三社) 시대를 열기도 했다. 1975년 한독맥주가 이젠백을 출시했고, 1994년에는 진로쿠어스가 카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오래가지 못했다. 2014년 롯데주류가 클라우드를 내놓으며 세 번째 삼사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경쟁 없는 맥주 시장에서 두 회사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맥주 가격을 비슷하게 유지했다. 당연히 재료의 수준도 비슷하게 유지했을 것이다. 가격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재료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알코올은 당에서 나오고, 당은 곡물의 전분에서 나온다. 재료의 양이 많아질수록 맥주의 도수도 높아진다. 도수가 돈으로 연결되다 보니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GMO 곡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정해진 도수에만 맞추면 되니 도수를 높게 만들고 물을 섞는다. 이게 하이 그래비티 공법이다. 맥주를 만드는 대부분 회사가 사용하는 방식이다. 국내 두 기업 모두 이 방식으로 맥주를 만들어왔다.

    맥주 한 잔, 이야기 한 다발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맥주를 즐기는 편다. 마셔봐야 한 잔이지만 남들이 몇 잔씩 마시면서 느끼는 만족감을 그 한 잔에 다 느낄 수 있으니 별로 불만은 없는 편이다. 맥주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많은지라 마셔보지 못한 맥주를 하나씩 골라 마시는 것 자체도 좋고 입에 맞는 맥주를 찾았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을 즐기는 시간도 좋다. 맥주에 관심이 있다 보니 맥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보이면 들춰보게 되는데 이 책도 그런 이유로 보게 되었다. 맥주에 푹 빠진 저자가 맥주를 마시면서 알게 된 이야기들을 엮어 놓았는데 맥주를 만드는 방법과 비법, 맥주에 얽힌 역사 등을 다루고 있어 맥주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책 중간중간에 깨끗한 맥주잔을 판별하는 방법이라든지 배탈 난 발명가가 나사식 병마개를 만든 사례처럼 재미있는 내용도 많아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좋다. 여러 이야기 중에 미생물학의 기초를 다진 파스퇴르가 맥주 산업에 이바지한 내용이 흥미롭다. 그는 저온살균법을 알아내면서 맥주 산업에 이바지했는데 발효에 대한 오랜 연구 끝에 그 업적을 정리해 '맥주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 파스퇴르가 시간이 지나도 맥주의 맛이 변하지 않는 방법을 알아낸 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과학자들은 때로 저 멀리서 실생활에 필요 없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렇게 확인하게 될 때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더 재밌게 느껴진다. 맥주는 사계절 내내 마셔도 좋지만 특히 여름에 더 맛있는 것 같다. 더위에 무거워진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매년 여름 기온이 오르는 것을 보아하니 내년에도 이와 비슷하거나 더 더울 것 같다. 그러나 축 처져 있는 대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더위를 잊기로 한다. 더위 속에 느낄 수 있는 청량한 느낌은 아무 때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어쩌겠는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밖에. 그게 더위든 뭐든 간에. 내년 여름에는 더위에 유독 약한 지인에게 맥주에 대해 얕은 지식을 좀 쌓아보라고 부추겨야겠다. 취향에 맞는 맥주를 고르는 시간을 좀 길게 가지다 보면 어느새 여름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동강 맥주의 편의점 4캔 1만 원은 가능할까?

    북한 맥주는 사정이 다르다. 대동강 맥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발티카 맥주를 맛보고 우리는 왜 이렇게 못 만드냐라고 해서 대동강 맥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북한은 약 350만 달러를 들여 영국 러셔스양조장의 시설을 들여왔다. 북한의 양강도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홉 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기후 조건이 좋아 굉장히 좋은 홉이 난다. 한국 맥주가 따라가기 힘든 결정적인 부분은 맥아의 함량이다. 한국 맥주는 전체 내용물에서 맥아가 차지하는 비율이 많아봤자 5~6퍼센트다. 그에 비해 북한은 10~12퍼센트다. 한마디로 북한 맥주는 한국 맥주보다 2배 많은 맥아를 사용하는 것이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집어넣으니 맛이 안 좋을 리 없다. 하지만 한국 맥주와 북한 맥주의 차이를 만든 가장 큰 요인의 정치사회 형태다. 한쪽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독과점으로 운영되는 산업의 결과물이고, 다른 한쪽은 공산주의의 허울을 쓴 전제 왕권 국가다. 왕이 맛있는 맥주를 만들라고 시키는데, 적당히 할 수 있을까? 한국 맥주는 적은 재료에서 일정 수준의 맛을 뽑아내는 데 특화되어 있고, 북한 맥주는 높은 원가로 좋은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대동강 맥주는 원가가 너무 비싸 마진이 안 맞아 수입을 포기했다는 설도 있는데, 진짜 이유는 정치 문제였다고 한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한국 편의점에서도 대동강 맥주를 팔게 되지 않을지 기대해 본다.

    맛있는 맥주 인문학

    이 책은 수도원의 맥주를 제외하고는 다른 맥주들의 맛이나 향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했다. 맛과 향을 표현하면 본인의 느낌에 집중을 못하고 책에 있는 느낌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아! 이 세상에는 정말 여러 종류의 맥주가 있고 다양하구나. 그걸 하나하나 맛을 다 보고 싶을 정도로 맥주가 더 좋아진다. 맥주는 IPA 이야기부터 시작되는데 저도 IPA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동네 펍의 맥주덕후 사장님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전 IPA는 향도 강하고 너무 써서 저랑 맞지 않았다. 전 개인적 취향은 흑맥주가 최고였다. 스타우트를 좋아하는데 스타우트는 에일에 속하는 맥주이다. 저는 에일과 맞는 취향인가 것 같다. 그리고 먹기 쉬운 건 라거나 에일이 훨씬 입에 맛고 상쾌한 기분을 줘서 좋아하는 맥주이다. 그 밖에도 람빅이 특이했다. 이 맥주는 자연발효 맥주인데 드라이하고 강렬한 신맛과 상큼함이 있다고 한다. 이 맥주에 당을 넣으면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먹을 수 있다. 이 맛이 참 궁금해진다. 그 밖에도 수도원의 맥주가 참 궁금하다. 수도원에서 맥주를 파나? 정말 신기하게도 정식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수도원 맥주는 11종이라고 한다. 전 맥주에 대해 정말 모르는 부분이 이렇게나 많았나. 이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세계의 맥주를 접하니 맥주맛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여행을 떠나보고 싶은 심정이랄까.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함께 저도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한국의 맥주 맛은 정말 수입맥주보다 맛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개인 양조장을 작게 가지며 맥주펍을 운영하는 가게도 많아지는 것 같았다. 제가 살고 있는 주변에도 트레비, 화수브루어리 등 개인 양조장으로 직접 수제맥주를 만들어 판다. 두 군데 다 제가 좋아하는 가게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런 수제맥주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충분히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 이런 맛의 개발을 하기보다 수입으로 수익을 거둬드리는 맥주회사들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웃픈 현실인 것 같다. 중간중간에 맥주의 역사도 나오고 북한 맥주에 대한 내용도 나와서 지루하지 않고 보는 내내 즐겁게 읽었다. 맥주는 역시 그냥 먹는 것보다 알고 먹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고 맥주를 사랑하는 맥주 덕후에게 필수인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