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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방향성에 맞추어 스스로 살 곳을 변화시켜 갈 수 있도록 건축과 공간을 읽는 방법을 소개하고 다양한 삶의 결이 깃든 좋은 터전을 제안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 어떤 평수로 이사할 것이냐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도시와 우리의 모습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던 저자는 이 책에서 '어디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도시를 이야기한다.

    유현준 (지은이), 을유문화사 (출판)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저자는 그 이전에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지만 '알쓸신잡'이라는 방송 덕분에 대중들도 이름을 듣거나 얼굴을 보면 알 만한 사람이 됐다. 건축에 대한 이해가 깊고 쉽게 알 수 있게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으면서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논의가 반복되고 있을 뿐이고 좀 더 여러 가지 예를 들고 있을 뿐이라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실망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기대에 못 미쳤다. 저자의 글이 갖고 있는 장점은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는 점과 익숙하고 자주 접하던 건축과 공간을 조금은 달리 보도록 혹은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고 자신의 생각을 애매하게 내놓기보다는 명쾌하고 선명하게 내놓아 그 의견과 제안을 읽는 이들도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해준다는 것에 있다. '도시는...'는 읽었다면 '어디서...'는 그 논의를 이어가고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지금 서울을 그리고 한국의 도시가 좀 더 살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여러 제안을 내놓고 있다. 단순히 건축과 공간에 대한 설명만이 아닌 그동안 저자가 지켜봤고 생각해 왔던 여러 가지를 더해놓고 있고 이런저런 흥미로운 의견들 많아 읽는 재미 컸지만 큰 줄기에서 생각이 이어지는 것이 아닌 짧거나 토막 난 생각들로 묶여 있어 좀 더 내용을 다듬어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도시에 채워진 여러 건축에 대해서 도시에 있는 수많은 공간에 대해서 저자의 여러 생각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 흥미를 느끼며 그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답답하고 개성 없는 도시가 아닌 "우리를 화목하게"하는 도시가 될 수 있게 하려는 고민에 공감하기 때문에 저자의 생각을 이리저리 따져보게 된다.

    어디서 살 것인가?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좋아지는 책이 있다. 특히 인문학 교양서적류에 매년 책을 출간하는, 그래서 다수의 책을 집필한 저자들이 많은데 그런 저자들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저자의 밑천이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어떤 저자는 작년에 출간한 책에서 한 이야기를 올해의 신간에서 했는데 그게 실은 몇 년 전에 낸 책에서 했던 얘기를 표현만 조금 바꿔서 책을 내곤 한다. 재탕, 삼탕, 곰탕으로 끓인 그런 책들은 읽다 보면 결국 '아, 이제 이 저자의 책은 더는 찾고 싶지 않다'는 데에까지 이른다. 반면 매해 혹은 2년에 한 권 정도 부지런히 책을 내는 어떤 저자의 책들은 매해 기대가 된다. 신간 소식이 들려오면 저자가 최근에 언론과 한 인터뷰들을 먼저 찾아 읽게 되고 손꼽아 그의 책을 기다린다. 이전에 그가 자신의 책에 실었던 담론들이 과연 어디까지 깊어졌고 확장되었을지를 가늠하며 책을 기다리는 일은 즐겁다. 그렇게 받아 읽은 신간을 다 읽은 후에 마음과 생각에 차곡차곡 쌓이는 성찰들은 그 이후의 일상을 윤택하게 한다. 아, 정말 이런 저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왜 독자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지를 시장의 축소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고 사유의 축소 차원에서 접근하는 저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유현준 저자는 후자 쪽이다. 과연 우리는 '건축'으로 어디까지를, 인류의 어떤 부분까지를 해석할 수 있을까. 유현준 저자는 그가 책을 낼 때마다 이와 같은 도전을 벌이는 듯하다. 글을 쓰는 저자로서 이런 도전은 당연히 골치 아프고 때로 아주, 무척 고되고 재미가 없기도 하겠지만 독자에게 이런 도전을 바라보는 일, 그 도전에 슬그머니 수저를 얹어보는 일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얼마 전 아주 정독, 탐독을 했던 [어디서 살 것인가]에 다시 수저를 얹어보면서 나는 유현준 저자의 밥상에 여러 차례 수저를 올린 일을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고 있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자신에 대한 기특함이다. 근데 솔직히 이건 좀 민망한 이야기다.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명저를 알아보곤 '아, 기특해'라고 칭찬하면 말이 되지만 이번 경우는 말이 안 되니까. [어디서 살 것인가]는 이미 좋은 책, 정말 아주 괜찮은 책으로 수많은 매체와 독자들에게 자리매김한 책이다. 2020년이 이제 1분기 정도밖에 남지 않은 이 계절에 [어디서 살 것인가]를 두고 좋은 책이니 어쩌니 운운하는 건 뒷북 중의 뒷북. 그래도 꼭 내 독서록에 남기고 싶었다. 책은 무서운 매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자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 저자의 생각이 영글어진 배경 등이 종이 위로 두둥실 우러난다. 저자 스스로도 의도하지 않은 그 무형의 빛깔 속을 독자는 거침없이 해부한다. 그 빛깔에 반사된 혹은 그 빛에 고무된 독자의 내부에서는 역시 독자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 독자의 생각이 영근 배경 등이 저자에 호응하면서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그 이상한 세계 속에서 수백 년을 뛰어넘어 저자와 독자가 같은 경험을 가지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마치 한 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견고한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는 동안 이 얇지 않은 책의 곳곳에서 나는 연거푸 저자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아!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네요.' '완전! 나도 그런 생각했는데, 그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군요!' '맞아요, 그때 그런 감정이 막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와요.' 도시의 변두리, 골목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주택가, 도심 속 구석에 파묻힌 공원, 모든 것이 네모난 학교 등 도시에서의 삶을 이토록 넓은 공감대로 해석한 책이 과연 또 있을까. "어디서 살 것인가"를 그토록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와 건축과 그 속에서의 인간 존재를 해석하는 저자의 탁월한 시선뿐 아니라 도시 라이프가 현재 풀지 못하는 수많은 난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도시도 그렇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그러하기에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책을 만들고 (독자가 책을 읽는 행위는 책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도시, 내가 살고 싶은 도시, 내가 사랑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그래서 질문이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싶냐고, 그래서 그런 공간을 그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묻는 일이다.

    건축이 만드는 사회, 사회가 만드는 건축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 이 책은 단연 건축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문을 여는 주제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 12년 동안 생활하는 학교 이야기다. 몇십 년 동안 한결같이 상자 모양의 4~5층짜리 건물과 대형 운동장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학교의 건축은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의 아이들이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획일적이고 거대하다. 한국에서 이런 구조로 된 대표적인 건축물은 교도소와 학교 둘뿐이다. 둘 다 운동장 하나에 4~5층짜리 건물과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 크기를 빼고는 공간 구성상의 차이를 찾기 힘들다.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올 수 없듯이 교도소 같은 건물에서 획일적인 교육 아래 12년 동안 커 온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대형 학교 건물 안의 똑같은 교실, 숫자만 다른 3학년 4반에서 커 온 아이들은 대형 아파트의 304호에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통계를 보면 지난 40년간 학생 1인당 사용하는 실내 면적은 7배 늘었는데, 학생들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 각종 특별활동실, 체육관, 식당, 강당, 도서관 같은 내부 시설은 늘어났지만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이들의 다양한 취향과 결이 사라지지 않고 창의성이 빛날 수 있도록 학교 건물은 더 작은 규모로 나누어져야 하며, 그 앞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놀 수 있는 갖가지 모양의 작은 마당과 외부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건이 안 되면 테라스라도 만들고, 다양한 형태와 높이의 천장과 다양한 모양의 교실도 필요하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학교 이야기에서 더 절실하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크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