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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철학적인 높이의 시선이야말로 우리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킬 수 있다. '과거의 나'를 버리고 '바라는 나'로 살기 위해, 마음속에 야수 한 마리를 키우자.

    최진석 (지은이), 21세기북스 (출판)

    탁월한 사유의 시선

    철학 이론서가 아니라 '철학하기'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아래의 서문에 핵심이 녹아 있다. 장담컨대 이 글만 가슴에 녹인다면 다음 장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주제가 이 문단에 녹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보통 수준의 생각'은 우리끼리 잘하며 살았지만,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산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라고 착각해 왔다. 수입된 생각으로 사는 한, 독립적일 수 없다. 당연히 산업이든 정치든 문화든 종속적이다. 이런 삶을 벗어나고 싶다. 훈고에 갇힌 삶을 창의 삶으로 비약시키지 않고 싶다. 종속을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함께 누리다 가고 싶다. 남들이 벌여놓은 판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그물 틈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일은 이제 지겹다. 왜 우리는 경제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선진국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까? 현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렇다고 이 책이 여기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대신 저자는 우리만의 시선, 눈높이, 철학을 가지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즉 미국,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이 선진국인 이유는 단순히 경제력과 군사력만 강해서가 아니다. 사회, 문화, 정치, 철학적으로 한 단계 높은 사유의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중진국 단계에서 넘어가지 못하고 현재 제자리걸음 중이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점에 나는 동의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철학자답게 다소 추상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예민하고 독립적이며 과거의 나를 버리고 창의적으로 살라고 한다. 그렇다고 책이 허황되기 보이지 않는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탁견이 녹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타인에게 권하는 것이다. 국가 발전의 기본은 철학적 시선을 갖추는 일이라는 문장은 핵심중의 핵심이다. 아쉬운 점은 '철학하기'를 강조하다 보니 동어반복이 많다. 철학을 해야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점이 무한 반복된다. 또한 선진화가 우리의 도착지인가 의문이 든다. 왜 우리가 그런 국가들을 따라야 하는가. 우리만의 길을 모색할 수는 없는가. 꼭 "공부머리 독서법"이 즐거운 독서를 강조하기보다 독서를 통한 성적 올리기를 주장하는 것처럼, 이 책은 잘못 읽으면 철학적 생활보다 선진국 되는 법이 강조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좋은 책이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비전이 잘 녹아 있다. 철학이 저 멀리 있는 엉뚱한 학자들의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고등학생 시절 열심히 외운 철학사는 그냥 지식일 뿐이지 철학이 아니었음을 절절히 깨닫는다. 다시 한번 우리 교육에 속았음을 알았다. 겉만 번지르르한 교육에 나는 성장하지 못했고 지식만 퇴적되었다.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원하는 나로 살아라!

    왜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하는가? 철학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철학이 지금 이 시대를 극복할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철학을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실제 삶의 영역과는 다른 학문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취급해 왔다. 우리는 철학을 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이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철학은 보통 명사와 같이 쓰이지만 동사로 작동할 때만 의미를 갖는데, 철학이란 모두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을 뺀 이론으로서의 창백한 철학만을 수입해 왔고 직접 철학을 생산해 본 경험도, 생산해 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잘못 수입한 철학으로 개인의 가치관, 국가의 산업뿐 아니라 삶 전체를 종속당했음에도 그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한탄하며 최진석 교수는 유일한 해결 방법으로 직접 생각하는 철학을 제안한다. 주도적인 생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개인이 많아질 때, 국가의 정치 경제적 위치 또한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과 국가의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야 하는 철학의 실천법은 익숙한 나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 내가 원했던 나를 찾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철학의 출발과 끝에는 궁극적으로 내가 있다.

    배우는 철학에서 생각하는 철학으로,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해

    진정한 철학은 '부정(否定). 선도(先導). 독립(獨立). 진인(眞人)'의 네 단계를 통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다. 즉 기존의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기존의 것과의 불화를 자초해 종속적인 나에서 '독립'해, 주체적이고 참된 나, 즉 '진인'을 이루는 것이다. 본래 서양의 학문인 철학은 서양이 세계를 바라보는 전략적 시선의 합으로, 이러한 철학이 동아시아에 진입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의미하는 첫 사건인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동양을 패배시킨 서양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관찰한다. 구국구망(救國救亡), 즉 조국과 민족을 모두 구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학습(向西方学習)을 택한 것이다. 그 시작으로 대포와 군함이 핵심인 과학기술을, 다음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였으나 종래에는 그 배후의 힘이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서양의 것으로 일순간 바꾸어버린다. 문화, 윤리, 사상, 철학이야말로 국가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이란 인간 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넘어 한 국가의 선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중국이 철학을 통해 서양을 증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 이 시대를 분노의 대상이 아닌 전략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철학 속에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살다 가도 괜찮겠냐"는 최진석 교수의 말이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현실 가능한 해결책을 가진 선언이 되는 이유다.